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V 아구스타 (문단 편집) === 60년대와 70년대 레이싱에서의 영광 === 1950년대 후반부터 모터사이클 산업이 퇴조를 보이면서 1957년경 이탈리아의 이륜차 생산업체들이 다같이 레이싱에서 철수하여 경쟁을 줄이자는 신사협정을 맺게 되는데, 도메니코 아구스타 백작은 처음에는 이 협약에 참여하는 것처럼 하다가 레이싱을 계속 이어가는 통수를 치게 된다. 이렇게 통수까지 쳐가며 레이싱에 계속 매진한 결과 1960년 들어서면서 WGP를 석권하다시피 하는 성적을 보이기 시작한다. 나중에 전설적인 레이서로 인정받는 마이크 헤일우드(Mike Hailwood)[* 1940.04.02 - 1981.03.28. 이 양반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불세출의 천재 라이더/드라이버로 일컬어지는데, 자코모 아고스티니 이전 MV 아구스타의 WGP 석권을 이루어 내고, 나중에는 [[F1]] 레이서로도 활동한다. 1967년 모터사이클 레이싱에서 은퇴했다가 1978년 다시 복귀해 38세의 나이로 [[두카티]]를 타고 맨섬 TT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 지금까지도 두카티의 명차 중 하나로 꼽히는 MH900E가 마이크 헤일우드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차이다.]를 필두로 WGP 챔피언십을 석권하다시피 하더니 1966년 시즌부터는 역시 나중에 전설적인 WGP 레이서가 되는 자코모 아고스티니(Giacomo Agostini)를 레이싱 팀에 영입한다. 자코모 아고스티니는 개발을 거듭해서 이미 좋은 성적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던 3기통 500cc 엔진으로 만든 레이싱 머신을 타고 거의 10년에 걸쳐 MV 아구스타가 WGP의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황금기를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때의 500cc 3기통 엔진은 12,000RPM에서 최고출력 75마력에 최고시속 261km/h를 발휘하였다. [[파일:MV-Agusta-500-3.jpg|width=780]] 이 시기 MV 아구스타가 달성한 레이스의 위업은 전설적인데 유럽 메이커인 [[두카티]], [[베넬리(오토바이)|베넬리]], 질레라, [[노턴#영국의 모터사이클 제조사|노턴]], [[모토구찌]]는 애초에 MV 아구스타의 상대조차 안되었고 61년부터 GP에 참전하기 시작해 그 기세를 높이던 [[혼다]], [[SUZUKI|스즈키]], [[야마하 모터]], [[가와사키 중공업|가와사키]] 등의 일제 브랜드들도 MV 아구스타가 철수할때까지 우승과 포디움을 쉽게 넘보지 못하였다. 1976년 철수할때까지 컨스트럭터 월드 챔피언 타이틀 37회, GP 통산 우승횟수는 265회[* 4기통으로 달성한 우승이 192회, 3기통 머신으로 63회, 2기통 머신으로 10회 우승하였다.], 17년 연속 GP 챔피온 타이틀 획득(1958년 ~ 1974년) 등등 특히 1958~60년에는 4개의 모든 WGP 클래스[* 지금은 Moto 1, 2, GP로 나뉘지만 그때는 125cc, 250cc, 350cc, 500cc 총 4개로 클래스가 나뉘었다]에서 모두 우승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현재까지 MV 아구스타가 보유하고 있는 연속 GP 챔피온 타이틀 기록을 혼다와 야마하도 깨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혼다와 야마하는 14회 타이틀 기록을 갖고 있다.] 77년부터 참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인 지금까지도 혼다와 야마하, 아프릴리아에 이어서 역대 우승 순위로 보면 4위에 랭크하는 걸 보면 그 당시 MV 아구스타가 GP에서 가졌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알수있을것이다. WGP 4개 배기량 클래스에서 2,3,4기통 모두 우승을 차지한 전적이 있는 유일한 모터사이클 제조사이며 맨섬TT를 비롯하여 WGP 라는 대회가 없었던 옛시절부터 레이스에 참여하여 일제 4사 브랜드가 GP에 참여한 이후까지도 레이스에 총 3000회가량 참전했으니 사실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브랜드이다. 또한 맨 섬 TT에서의 활약 또한 대단했는데 52년 첫 출전부터 마지막 출전인 72년까지 총 34회 우승[* 4개 클래스 적산 우승 횟수다, Moto 레이스로 따지면 GP 클래스인 500cc 시니어 맨섬 TT 클래스 에서는 1972년 자코모 아고스티니가 레이스에서 철수할때까지 총 13회 우승.] 총 61회 포디움에 오르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72년, 자코모 아고스티니가 그의 친구이기도 하였던 레이서 질베트로 파를로티(Gilberto Parlotti)가 경기중 숨진 것을 계기로 맨섬 TT 보이콧을 선언하며 MV 아구스타도 TT에서 철수하게 된다. 이는 다른 레이서들의 공동 보이콧을 이끌어 내어 결국은 WGP에서 맨섬 TT 레이스가 완전히 빠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여기서 자코모 아고스티니의 역할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1942년생인 그는, 1964년에 도미니코 아구스타 백작에 의해 발탁되어 당시 팀 리더이던 마이크 헤일우드의 팀메이트로서 MV 아구스타 팀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WGP의 포디움을 점령하다시피 했는데, 특히 1968년에서 1970년 사이에는 출전한 레이스에서 모조리 우승하는 그야말로 가공할 성적을 거두었다. --그랑프리요? 그거 여러명이 바이크타고 달리다가 아고스티니가 우승하는거 아닌가요?-- 그가 WGP 에서 세운 기록들 중에는 2021년 말 현재 MotoGP의 기록까지 통산하여 아직까지 깨어지고 있지 않은 기록들이 많다. - 최다 레이스 우승 : 122회 - 최다 챔피언십 : 15회 - 최다 연속 챔피언십 : 12년 연속 - 최다 연승 : 35연승 - 2등도 19연승으로 역시 아고스티니가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불참을 선언하기 전까지 맨섬 TT 레이스에서도 10회나 우승하였다. 그는 텔리비젼 등의 매스 미디어가 아직 초기적인 발전을 하던 시기였음에도 레이싱계의 스타 및 이탈리아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등극하였으며, 현재 모토GP의 전신인 WGP가 좀더 인기를 끄는 데 한몫 하기도 하였다. [[파일:지아코모 아고스티니.jpg|width=780]]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